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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4.

오후 도반 동진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사스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표충사 주지말로는 상좌가 있는데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연락이 왔는 모양이다. 육신은 쇠약하고 정신은 어눌하다고 한다. 여러 차례 이곳에 오시자고 했는데 때를 놓친 것 같다. 올 들어 양아치 한 마리 때문에 백락사 행정이 엉망이 되고 그 와중에 공양주보살마져 없는 상태가 이어진지라 은사스님에 대한 보위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미룰 수가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이번 추석에도 선물만 보내고 인사도 못드렸는데 이제는 전화까지 잘 받지 않으시니 낙엽같은 노년의 기운이 스산하게 느껴진다.

살면서 이렇게 험한 꼴과 암울한 기억은 없었던 내 인생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통과의례의 늦은 성장통이면 좋겠다는 바램이지만 나이들어 더 이상 추해지면 안된다는 절박함까지 더해져 심신이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어느 순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 이제는 나에게 필요한 시간인가 회의하다가도 죽는 날까지 인생이란 고통과 사건의 연속이니 그것을 즐겨라는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감당할 몫이면 그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다는 것,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보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마음정리가 먼저일 것 같아 이번 달 안으로 은사스님을 모셔 와야겠다.(10월 30일 모시고 옴)

삶에 대한 고귀한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될까?

누구 때문에 살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 후회 없는 결정과 지향으로 나만의 길을 걸어 온 것 같은데 인생은 아직도 안개속인 것 같고 신심은 부족한 것 같아 하루를 보석 같이 살라는 말에 가슴이 저린다. 의무같지만 그런 마음 없이 세상을 살기에는 나의 관습이 허락하지 않고 부담스러워도 마음이 하고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보듬고 싶은 이 마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직도 나는 지키고 싶다.

사람이 있다, 없다.

시간이라는 흐름위에 하나의 기억이 될 뿐 나는 집착이라는 이름을 버렸는가? 묻고 싶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인데 살면서 사람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고 살 수가 있을까? 그때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때 사랑했었다고 해야 하는데, 늦어도 전화했어야했는데 그리고 지금이라도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입동의 아침, 가을비가 내린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은사의 눈빛이 흐리다. 방만 따듯하게 준비한다고 내 할 일이 끝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과일을 한접시 준비하여 들어간 방에 옷도 벗지 않고 누워 있는 노인을 본다. 잠바는 벗고 주무시라 이야기해도 못 알아 듣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우리는 세월에 이렇게 미끄러지면서 살아가나 보다.

늙어 가면 추하지 않은 것은 나무밖에 없을까?

막막한 항해를 이제 시작해야 하는 느낌. 부디 슬기롭되 자존을 지키는 내 삶이

되기를 부처님께 빌고 또 빈다.

2018.11.7. 입동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