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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문득
기도하다 서울 약사사에서 인연이 되었던 노보살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기름보일러에 기름을 채웠는데 연료게이지 역할을 했던
고무호스가 늘어져 보일러실에 기름이 새어 버렸고, 방안에 까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니 노보살님 주위를 살피다가 보일러실의 비상 상황을 발견하고는
혼자서 넘친 기름을 밖으로 퍼내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먼 곳에서 일하고 들어온
나에게 얼마나 힘들게 기름을 펐는지 이야기를 했었지요.
당시 보살님은 시한부 인생이었고 죽기 전에 당신이 벌어 놓은 재산
당신이 쓰고 싶은데 한번 써 보고나 죽자는 마음 가족에게 공표했고
외아들 내외는 그런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홍천에 가고 싶으면 모시고 오고
병원에 갈 날이 다가오면 모시고 올라가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는 기억.
약사사에도, 백락사에도 지장보살님을 모시면 좋겠다고 보시를 하시고
당신은 한줌의 재로 이별을 했고 약사사에서 49제를 모셨습니다.
서울 갈일이 있으면 당신이 없는 당신 집에 잠깐 들려 이곳 야채라도 놓고
오곤 했는데 어느 해인가 가족들이 모두 이사를 가고 어쩌다 들렸던 발걸음이
뜸해지드니 어느 때인가 기억조차 희미해진 세월이 근 15년.
똘방한 손자. 착한 며느리, 죽어라고 교회 다녔던 영감님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 아침 새벽 기도에 당신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때만 해도 젊었던 나의 어머니와 함께
즐거웠던 시간이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큰 집(약사사)에 무언가 나눠줄 수 있어 행복했고 어떤 일을 해도 힘들지 않았던 그 시절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상대로만 인연된 축복임을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흐르면 문득
그리워질까요?
나이 들어 자주 찾아 오는 이별의 회한과 막연한 단상의 안타까움들이 깊어지고
개화동 할머니, 선자월 보살님 ,반야정사 할머니보살님 그리고 가끔씩 뵙는 인영이 할머니.
당신 마음만큼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축원드리며 그저 당신이 더 건강하시기를
바래는 내 마음 속에 멀지 않은 이별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간절한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들어 노쇠한 육신처럼 모든 것을 놓아 버릴 수 있을 때
저는 그것을 기적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외람되지 않는다면 죽음도 병고도 받아 들여야 할 순서입니다.
이상한 종교의 가르침처럼 개종하면 천국 가고 죽을 병이 낫는 것이 아니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순리를 받아드림이 기적이고 가피임을 정의하면서
당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내 마음속에
헤어진 인연의 축복을 축원하는 감사함이 절절해집니다.
어느 날,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냐고 지금의 나만큼 나이든
손자가 이곳을 들리면 당신 나이만큼의 늙은 나는 어느 방에서
차한잔 나눌까요?
그 때도 내 그리움은 지금과 같을 것이며 나는 단지 늙고 병들고
지친 내 모습 속에서 오늘을 그리워할지 모를 일입니다.
당신이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정리했던 것처럼
나도 남겨진 시간을 현명하게 정리하면서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낙엽 밟는 소리가 참 아름다운 백락사 가을입니다.
그리움이 낙엽 구르는 소리처럼 또렷합니다.
많은 할머니 보살님들이 보고 싶습니다. 어머님도.
2009.10.28일 선화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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