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락사 :::

제목	가을 축제를 준비하면서 -불교신문
작성자	back432
작성일자	2016-03-11
조회수	500
가을 축제를 준비하면서 성민 (홍천 백락사 주지) 언제나 여름은 길었습니다. 폭염에, 한바탕 비 잔치를 겪고 난뒤에야 가을이 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문득 아침 바람이 서늘해지고 햇살이 없는 곳의 서늘한 냉기가 이제 가을인가보다 느껴지면 배추 무우는 자기 자리를 잡아 튼실해져 있고 여름 코스모스와 달리 빛깔이 선명한 가을 코스모스는 파란 하늘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느낌. 이렇게 가을은 오고 마당가의 밤송이는 하루가 다르게 익어 갑니다. 여름밤의 투정도 문득 사라지고 밤벌레 소리 몇개인가 헤아리다 새벽을 맞이 하는 영혼의 합창 같은 살아 있음의 메아리는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지난 여름의 기억을 말끔히 지웁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법. 각자가 겪었을 시련과 고통도 이 가을 속에서 아물어지는 상처이기를 바래봅니다. 가을축제를 준비하면서 가을이 오기까지 기다려준 것은 너와 나만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기다리지 않아도 맞이해야 하는 삶의 무게와 그리움 때문에 익어가는 과일나무도 두께를 더해가는 입구의 오동나무도 올해는 그 그림자가 길어졌습니다 기다렸다고 해도 거짓말이고 기다리지 않았다고 해도 거짓말이지만 나이들어 지혜롭지 못함과 너그럽지 못한 이 심성이 부끄럽기만 한 것은 최선을 다한 삶의 몫에 주어진 결과가 아니기에 가을 찬바람이 더 시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을 햇살의 찬란함은 적당한 수분과 적당한 공기와 적당한 일조량 때문이겠지만 결실을 기다리는 땀방울이었고 결실을 준비한 노력이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밭에서 익어 가는 모든 것들, 배나무,대추 나무 ,오동 나무.밤나무등이 하루가 다르게 열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가을 햇살도 ,가을비도 어느 것 차별없이 손을 내밀고 그 차별없음에 말없이 자라는 생명들이 어찌 식물만이겠습니까? 배짱이도 ,귀뚜라미도, 여치도, 메뚜기도 존재의 의미를 키웁니다. 가을축제는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가을이 지나면 떠날 것을 미리 걱정하는 그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자리에서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너는 너의 아름다움을 키울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축제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가을에 또 다른 시련이 온다고 해도 축제는 시작 되었습니다. 밤을 지세우게 하는 벌레소리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무우 배추 잎속에, 조금씩 가슴을 열고 있는 밤송이 위에, 그리고 지난 여름의 아픔이 치유되길 기도하는 저희들의 마음속에 가을 축제는 시작되었습니다. 도량 곳곳에 촛불을 밝혀 놓았습니다. 가을 하늘에서 어린 왕자가 이 촛불을 궁금해하며 가을 축제에 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오늘은 이웃의 아이들이 한바탕 소란을 떨고 불보살님 환한 미소가 그 뒷모습에 보여 나무도 풀도 곡식들도 싱싱하기만 합니다. 그대는 지금 어디서 가을 축제를 준비하고 계시나요? 2006년 9월 선화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