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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락사 작은 이야기
1. 90년대 초,중반 - 시작하며
가끔 달아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아주 열심히 살았던 것도 아니고 아주 게으러지도 않았지만,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것은 30대의 혼돈일 수도 있었고, 10년차의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었을 수도 있었다. 은사스님을 모시고 살았던 자유 없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욕구일 수도 있었고, 독립의 의미를 개성으로 치부하며 은둔이 유일한 해결인 양, 낭만의 토굴 생활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1993년도 강원도 홍천, 생면부지의 땅에 짐을 풀면서 헌 집이라도 내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즐거웠던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도취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연탄보일러 놓고 도배하며 귀신 나올 것 같은 폐가에 생기 불어 넣고, 첫 겨울을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겨울은 자신 없는 계절이지만 왜 그때 그 겨울은 그리도 추웠는지.
봄은 할 일이 많아 행복했다.
농사 경험도 없으면서 이웃에게 귀찮을 정도로 물어가며 고추, 옥수수, 감자, 상추, 오이, 케일, 고소, 토마토, 참깨, 들깨, 고구마 등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심어보았다. 일찍 먹는다고 하우스까지 설치해서 물주는 작업을 하면서 요령이 생기기까지 삼 년을 하우스 한 동으로 버티다가 노지로 전환했다. 지금도 절에서 먹는 부식은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는 편이다.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인지 서울에서 오시는 신도님이 귀경하는 편에 한 줌씩 집어 주면 좋아라 하신다.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옛 인심을 느끼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침예불 마치고 시작한 농삿일이 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그 일을 즐기면서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웃의 경운기 빌려 밭 갈고 로타리 치던 것이, 관리기도 구입하고 지금은 포크레인까지 있으니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나무는 십년 앞을 내다 보아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첫해부터 지금까지 나무 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배나무, 은행나무, 매실나무, 살구나무, 밤나무, 회화나무, 겹벚꽃나무, 대추나무, 호두나무, 꽃복숭아나무 등등 울창한 숲을 만들었다. 배나무는 예쁜 정원이 되어 봄, 가을에 꽃과 열매로 즐거움을 주고 있다. 나무 솎기를 하면서 군부대와 이웃주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가로변에 식재하기도 한다. 이제는 기념 식수하는 가족도 있어 나무에 이름표도 부착하며 고마움을 함께 한다.
2. 90년대 후반
백락사 가까이에 사단이 있어 군법당에 일요일마다 나가 법회를 보기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생활이 되었다. 군인 가족들의 왕래도 잦고 어려운 일도 항상 의논을 한다. 특히 진급철이 다가오면 좀더 정성을 쏟아 기도하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면서 활기찬 군포교가 되는 것 같다.
근처에서 법회 요청이 들어오면 가급적 수용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못 갈 때도 많다. 주변의 사찰들과 연결하여 도움이 될 수 없을까 고민해 보았다. 가까운 사찰은 철마다 인사 다녔다. 내 힘은 너무도 미약했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언젠가 오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시골 절집이라 모두 어려워서 그런지 여유가 없어 보이는 것 같았다. 몇몇 사찰을 제외하고는 왕래마저 없고 함께하는 행사마저 전무했다. 그리고 조계종 사찰이 몇 곳 되지 않는 점도 구심점이 없는 원인 중의 하나인 것 같았다. 관내 영향력은 천태종이 제일 큰 것 같았고, 소속 사찰은 태고종이 제일 많았다.
몇 해전 홍천불교사암연합회를 다시 결성하였고, 올해 초부터 사암연합회의 제3대 회장을 맡고 있다. 홍천군내에는 모두 70여 개의 사암이 있지만, 사암연합회 등록된 사찰은 20여 개 정도이다. 가입 조건은 달리 없고, 많은 사찰이 동참하는 것이 좋다는 여론을 반영하여, 가입의사만 있으면 적극 환영하고 있다. 그리고 사암연합회에 소속된 각 사찰의 신도회 임원으로 구성된 신도연합회도 구성하여, 매월 가지는 사암연합회 모임에 함께 동참을 하고 있다.
사암연합회 목적은 서로간의 친선을 도모하는 것과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여법히 치루는 것 정도로 잡고 있다. 분기별로 간단히 행하는 행사를 매뉴얼화해서 진행하고 있다. 1월에 신년하례법회, 5월에 부처님오신날 행사, 8월에 불교 축제, 12월경에는 큰스님초청 송년법회 겸 불우이웃돕기행사 등을 제시했다. 이런 행사들은 그간에 백락사에서 치루어 본 일들이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올해 부처님오신날 행사 중에 홍천 본당 주임신부님을 초청해서 축사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응해주셔서 좋은 선례를 남긴 것 같다. 그 고마움으로 백락사에 초청해서 공양 대접을 했고 지금도 왕래가 있다.
백락사 부처님오신날의 행사는 해마다 색다름이 있다.
전통국악부터 불자가수 또는 현악사중주단,승무,사물놀이등을 다양하게 식전행사로 꾸민다.직접 접할 수 있는 작은 문화들이 삶을 풍성하게 함을 믿기 때문이다.회향은 도량 구석 구석을 함께 돌면서 정근하고 마지막으로 탑돌이를 한다. 봄밤의 개구리소리와 등불이 너무나 아름답다.추억은 언제나 회상할 수 있는 보물이다.즐거운 기억은 부처님 오신날의 선물이다.
3. 2000년대 초반
포교원 신도국에 잠시 근무했다. 그 인연으로 서울지방경찰청 경승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한 달에 한 번은 법회를 보고 있다. 법회 내용을 딱딱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빌려서 법회를 보는 특수한 경우인지라 가급적 김밥이라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함께 대화도 나누고 서로의 고민도 경청해 본다.
직장인의 특성상 시간여유가 없기 때문에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백락사신도님들께서 대신 만들어 주고 있다. 서울나들이도 되고 등만드는 작업을 서둘러 마치면 근교의 조계사 ,길상사,봉은사등을 참배하고 돌아가므로 성지순례도 겸해서 할 수가 있다.
올해는 정월대보름맞이를 서울지방경찰청사의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한바탕 크게 벌렸다. 풍물놀이도 하였고 불자가수들도 동참해 주어서 뜻깊은 시간을 만들었던 것 같다.
이런 행사 속에 시골 사찰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활동의 감동을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기에 좋은 것 같다. 어려운 곳만을 돕는다는 선입관보다 어디고 도울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이도 큰 수확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춘천교도소 종교위원으로 인연이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정기법회만 이끌다 불교총괄지원을 계속해 오고 있다. 염불소리에, 선한 눈빛 때문에 사람이 미워질 수가 없다. 세상살이가 힘들어서겠지 생각한다. 그래서 불교인으로 세상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본다. 그 사람들이 보낸 낱낱의 편지에 답장을 다 해주려고 노력한다. 글이 얼마나 귀한 시대인가.
교도소내에 직원 불자회가 있는데 작년에는 수계법회를 백락사에서 포교사단 협조로 치루었다. 포교사단 교도소팀의 연수 일정에 전(前)교무과장이 특강을 해 주시는 인연도 이런 선연들이 있기 때문이다. 올 한가위에는 1천 명분의 떡 공양을 하였다. 백락사와 인연을 맺은 많은 신도분들의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홍천군청불자회인 ‘미타회’의 지도법사를 허락한 것도 이곳에 사는 빚갚음이라 생각한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가장 소중한 땅임을 알기에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분들이 한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리라. 공무원의 특성상 한 달에 한 번 법회 보기도 쉽지는 않지만 동참하려고 모두 노력하고 있다. 매월 첫째주 토요일 백락사에서 법회를 보고, 점심 공양하고 그리고 회향하는 순서이지만 종종 건너뛰기 일쑤이다. 법회를 거르게 되면 홍천군청에서 가까운 사찰에서 평일 오후 7시쯤 법회를 보게끔 유도를 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낙수에 돌이 패이듯이 신심도 그런 끈기가 필요한 것 같다.
4. 2000년대 중반
노인들도 모두 교회에 나간다. 교회 목사님이 마을까지 봉고차를 몰고와서 노인들을 모두 모시고 교회에 간다. 그래서 일요일이 되면 동네마다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안되겠다는 절박함 때문에 거사림회를 창립해서 발족시켰다.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모두 노인층이지만 매월 한 차례 법회를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특강 형식을 빌려 지역유지도 모시고 유명인사도 모시면서 나름의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농번기에는 법회 인원 모으기도 힘들기 때문에 외지에서 참배오는 인연이 있으면 법회일에 맞추어 오도록 유도를 하고 있다. 특강을 해주시는 분도 그렇고 법회 대중도 신이 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사림회 회장님께서 알아서 특강 선생님을 섭외하는데 개개인의 인연도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 같다. 모두 백락사의 가족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락사는 행사가 많다.그 많은 행사를 치루는데는 관음회 회원의 힘이 바탕이 된다. 부처님 오신날과 천등제 행사는 몇백명을 치루어야하는 행사이고 경로잔치 및 인근 학생 초청등 식사 대접을 염두에 두고 하는 행사가 많기에 모든 음식 접대를 뷔페식으로 바꾸었다.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접시등의 초기 준비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틀이 잡혔다. 관음회 회원의 동참과 노력봉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관음회 회원들의 이구동성은 “일 좀 만들지 마세요.”라는 말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이웃과 함께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올해는 부처님오신날부터 2주일간 환경설치미술전 ‘일락전(一樂展)’을 개최했다. 환경보존과 자연보호를 주제로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자는데 의의를 두었다. 백락사의 주변 환경을 캔버스 삼아 사찰 경내를 전시장으로 활용하여, 전체를 작업공간으로 확대시켜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작가들을 섭외하기는 쉽지 않은 접촉이었지만 다들 흔쾌히 응해주었는데 작가 선생님 중의 한분이 거사림회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전시회 도중에 인근의 초등학교 2개교와 유치원 2개원의 모든 학생을 초청하였다. 함께 전시된 작품을 보고 느끼며 다같이 점심 공양을 하고 선물로 모두에게 시계를 선사했다. 줄 수 있을 때 주는 것은 행복이다.베풀고 싶다고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고 받는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백락사의 뜨락이 항상 여유 있으면 좋겠다.
미술전 마치는 날에는 인근 지역의 노인분들을 백락사로 초청하여 경로잔치를 베풀어 회향의 의의를 살려 보았다. 백락사에서 행복해 하는 미소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의미가 이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서로의 종교를 떠나서 모두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작은 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백락사 천등제(千燈祭)를 올해로 두 번째 치루었다. 올해의 행사는 지난 여름 적잖은 수해를 입은 지역주민 모두를 위해 수해복구의 기운을 북돋우고 군민 화합을 기원하는데 그 취지를 두었다. 8월 26일날 저녁부터 1부는 작은 음악회, 2부는 촛불발원, 3부 철야정진의 순서로 진행했는데 소모성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여름밤의 작은 음악회도 아름답고, 개개인의 이름으로 밝히는 촛불도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며, 밤 세워 기도하는 것이기에 모두 즐겁고 행복해 한다. 천등제를 마치고 결산한 금액과 사중의 동참금을 모아서 군청 사회복지과에 수해의연금을 기부했다. 액수의 대소를 떠나 행사에 동참해 준 모든 이들의 성심(誠心)이 그 아팠던 마음을 챙기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랬다.
천등제에 앞서서 열이틀 동안 백락사 선화당에서 나비축제를 열었다. 서울대공원 연구원이었던 김호영씨 내외가 설립, 운영하는 ‘솔무생태체험관’의 도움으로 열 수 있었다. 호랑나비, 배춧잎나비 등 형형색색의 온갖 나비를 애벌레일 때부터 부화할 때까지 그 전 과정을 직접 관찰하면서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일깨우는 기회를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즐거운 체험이 되었고 매년 찾아 오는 서울의 어린이집 (즐거운 어린이집) 식구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것의 접촉만큼 좋은 교육이 없는 것 같다.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좋은 기억과 밝은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진이 빠지듯이 열정도 줄어들고 있다. 20년차가 주는 의미는 회의가 더 많고 새로운 충전을 위하여 고민이 늘어만 가는 시기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기에 개개인이 행복해 할 때 더불어 행복해 본다.
단 한 사람이지만 백락사가 있어 행복하다고 할 때 강원도 홍천의 백락사는 외롭지 않을 것이리라 자신하며 대사회적 메시지도, 자비행도 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나무와 돌들이 살아 있는 생명이 되어 말을 걸곤 한다.
내가 행복한 까닭, 태어나 이 땅위에 나무 한 그루 심었다면 지구상에 작은 변화를 준 것이니 그대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나는 얼마나 많은 나무를 심었나? 수백 그루? 수천 그루?
5. 그리고 오늘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나이 먹은 것도 그냥 아픈 것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소외가 심각해 보인다.
노인분들의 복지와 수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부 시책도 복지에 중점이 주어진 것 같은데 백락사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해 본다.
자료도 모으고 충고도 귀 기울여 보지만 내 의지가 얼마나 되는지 회의만 들고 있다.
함께 할 수 있을 때 종교도 당당해지리라 생각하기에 이웃과 주변을 위해서, 백락사를 위해서 작은 공동체가 필요한 것을 절감한다.
공부해야겠다. 시간을 아껴서 공부해야겠다.
백락사 홈페이지도 생명체가 되었다.
접속하는 분이 많지는 않지만 모두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기대감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한 바탕이기에 더 노력을 하게 된다.
작은 글 하나, 그림 하나가 생명이 되어 노닌다.
작은 생명의 경이를 알진데 작은 것 하나에도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세상에는 허투로 할 것이 하나도 없다.
6. 후기
13년의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처음 이곳에 뿌리 내리기 까지 주변의 배타성과 무관심이
자신을 지치게 할 때가 많았고 끊임없이 하심하게 만들었던 이웃과의 관계,
가는 것은 있지만 돌아 오는 것이 없을 때의 인간적인 실망감마져
줄 수 있는 자의 교만으로 반성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당한 선의 포기가 현명할 수도 있다는 설정은 차라리 마음편했습니다.
어디서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포기도 현명한 판단은 아닌지,
자신의 역할이 크고 화려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가 할일을
사랑하고 즐겁게 할 수 있으면 그것도 부처님의 가피일 것입니다.
무엇을 할 것이라는 목표도 없었고 사명감도 없었지만
출가자로 살아가면서 해야 될
최소의 처신이 무얼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 봅니다.
백락(百樂)의 근원은 일락(一樂)이라고 생각하기에
한 사람의 소중함과 그 작은 정성이 지금의 백락사를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많이 공부하고 많이 노력하겠지만
처음처럼 사소한 주변의 일상들이 내가 바라보아야할 대상임을 기억하면서
한 사람에게도 소중한 백락사가 될 수 있도록
부처님께 기도드립니다.
2006년 11월 선화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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